너에게 닿는 거리, 17년
집에 내려가 있는 동안 다 읽은 책. 이번에도 역시 e-book을 이용했어. 지난 번 책이 약간은 무거운 책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상큼 발랄한 게 읽고 싶었는지도! 대략 제목에서 추측해볼 수 있지만 애틋하잖아 이런 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혹은 지고지순한 일편단심 민들레 같은 그런 이야기. 신카이 마코토 작 애니메이션이 나에게 잘 와닿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여서 일거야. 하지만 이번 책은 신카이 마코토보다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 쪽이 더 가까웠군. 자, 리뷰를 시작해보자.
제목을 보면 드는 생각은? 아, 타임 슬립 물이겠구나! 시간을 다루는 이야기는, 특히 멜로물은 대개는 비슷하지. 그래서 읽는 동안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겹쳐졌어. 실제로 비슷하기도 하지. 이야기의 시작은 우리 나이 또래 되는 여자가 어린 소년에게 다가와 편지를 전해주는 것으로 시작 돼. 이 둘이 주인공이지. 이건 현재의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는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애나가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1995년,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전학온 의문의 소년. 그렇군!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어! 이 소년, 배넷은 미래에서 편지를 받고 애나를 찾으러 왔군! 그리고 이 때 배넷을 본 애나는 미래의 배넷에게 자기를 찾아달라고 편지를 줬던 거군! 은, 그런 것 치고 배넷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잘해줬던가 냉랭했다가를 반복하기를 몇 번, 서로에게 점점 끌리는 것을 느끼고 배넷도 마음을 열게 되지. 그리고 자신의 비밀을 하나둘 씩 털어 놔. 자신이 순간 이동,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 미래에서 온 이유 등. 하지만 뜨거운 사랑을 하는 청춘에게 그 무엇이 난관이랴! 더 서로를 아끼게 되는 배넷과 애나. 하지만 배넷은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 애나를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편지의 내용. 서로의 사랑이 깊어가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때 공개는 편지의 내용은 나름 반전이랄까. 그건 배넷에게 보내는 편지였지만 사실은 현재의 애나가 과거의 애나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 배넷을 기다리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 것. 그리고 이야기는 바로 결말로 접어들지. 배넷은 사라지고, 애나는 혼자 남겨져 방황하지만, 곧 미래의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해. 그리고 그 길에 다시 배넷이 나타나지. 그리고 해피앤딩. 결말은 올초 인기 있었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닮아있어. 배넷이 시공을 컨트롤하는 힘을 잘 조절할 수 있게 되어 과거에 남아 애나와 함께하는 거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처음 봤을 때 충격도 받고 감동도 받았는데, 이번 책은 생각보다 그런 것은 없었어. 역시 이야기에도 유행이 있어서 이와 유사한 책, 영화, 드라마 등이 홍수처럼 나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겠지? 그럼에도 그들의 사랑은 존중 받아야겠지. 나 역시 언제까지라도 자기를 사랑할테니까. 게다가 우리는 같은 시간과 공간에 있잖아? 행복한 일이야. 메인 주제와는 다소 다른 이야기지만, 눈이 갔던 부분은 과거로 돌아가 사고가 난 친구들을 구하는 장면이야. 배넷은 이와 같은 사소한 변화라도 나비효과에 의해 결과에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지. 실제로 그 덕분에 그들의 친구들은 사고를 면했지만, 원래의 시간과는 다르게 서로를 사랑하지 않아. 글쎄, 이런 평행우주도 이미 진부한 주제이고 타임 슬립물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거지만 (특히 영화 '나비효과'가 말 그대로 나비효효과와 평행우주를 잘 보여주고 있지.) 이런 소소한 하지만 중대한 차이는 나름 재미 요소인 것 같아. 우리는 살면서 항상 선택을 하잖아? 그리고 그 선택은 사실 무한한 미래 중 나머지 가능성을 모두 없애고 하나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기도 해. 그렇기에 어떠한 선택도 쉬이 하기에는 무거운 것들일 수도 있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현재야. 우리가 살아오면서 결정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는 얼마나 무궁무진한 미래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중에 우리가 만나는 미래는 몇 개나 되었을까?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 중에 0에 가까운 확률로 만난 거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라 할 수 없어. 배넷과 애나 사이에는 17년의 시간이 있지만 난 자기를 만난 때까지 26년 걸렸지. 26년 간 다른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면서 자기를 향해 달려온 거야. 운명을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있다면 내 운명은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걸거야. 그리고 자기와의 나은 미래를 위해 앞으로도 난 더 나은 선택들을 해 나가겠지? 다양한 미래 중 자기와의 행복한 미래를 향해서. 이건 나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
그나저나 해피앤딩은 좋은 것 같아. 읽고 나서 개운한 기분이 들거든. 요즘은 열린 결말이 대세라지만, 역시 난 해피앤딩이 마음에 들어! 마치 우리의 삶처럼! 하지만 시간이 날 때 '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다시 한 번 봐야겠어. 여러가지 디테일에서는 익숙한 동양권 문화여서 그런지 더 실감 나거든. 그리고 두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앞을 향해 걷자! 자기가 기다리고 있는 찬란한 미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