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을 설렌 마음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여행 준비를 했다.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어차피 잠 들기에는 늦어버렸다. 매우 이른 시간이었지만 가볍게 운동을 하고 씻은 후 방을 나섰다. 공항버스를 타러 가는 길은 밤새 내린 비와 눈에 젖어 있었지만 많이 춥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에 타는 공항버스에 설레임은 더 커져갔다. 시간은 6시 45분. 10분 남짓 버스가 늦었지만 비행기 시간은 이때까지만 해도 적절해 보였다.
공항 버스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곧 공항에 도착! 비교적 최근인 지난 여름에 왔던 탓인지 인천 공항도 이제 친숙하다. 하지만 티켓팅 줄이 도와주지 않았다. 혼자여서 자리를 맡아줄 사람도 없고 어쩔 수 없이 5번 쯤 꼬인 줄 뒤에 가서 섰다. 30분이 넘는 기다림 끝에 캐리어를 부치고 표를 받았다. 이제 공항에서 할 일은 보험을 들고 홍콩에서 사용할 아답터를 빌리고 환전! 그런데... 이 마저도 줄이 길다. 연말을 맞아 여행을 가는 사람이 많다. 생각보다 시간이 소요됐고, 라운지 사용 및 면세점 구경은 물 건너 가고 있었다. 곧장 탑승구로 향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수하물 검색대 줄은 한 층 더 대단하여 이 마저도 아슬아슬하게 되었다. 지난 여름에 이어서 달리기 시작. 저가 항공은 항상 먼 터미널이어서 힘들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서 겨우 도착하니 다행히 다소 이륙 시간이 늦춰져서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이 추운 겨울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자니 그저 한숨이... 하지만 이건 내 탓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게 이렇게 사람이 많을지 누가 알았을까. 비행 시간 1시간 반 이상 여유있게 공항에 도착했다구! 아무튼 다음에는 더 일찍 도착하든가, 저가 비행기를 지양하든가 해야겠다.
비행 중에 간단히 기내식을 먹고 잠도 자고 가이드북도 보고 있자니 창밖으로 홍콩처럼 생긴 섬이 지나갔다. 그런데 지나치네... 그러고보니 홍콩 공항은 활주로를 한쪽으로만 사용한다고 봤던 것 같다. 비행기는 10분 정도 크게 180도 선회하여 아까 보았던 섬으로 돌아가 착륙했다. 진에어는 처음 타봤는데 특이한 점은 별로 없었다. 저가항공사이지만 국내사 답게 승무원이 매우 친절했다는 거? 승무원 복장이 청바지인 것은 가벼운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수트는 괜히 불편한 기분이 든다고.
그리고 홍콩에 도착! 날씨는 과연 따뜻했다. 한국에서 입었던 겉옷을 가볍게 하고 현지 날씨에 맞는 옷차림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편의점(홍콩에는 세븐일레븐이 즐비하다!)에 들러 유심 칩을 두 개 샀다. 자 이제 부터 자기를 만날 때까지 5시간 정도 남아있다. 무엇을 할까? 미리 알아본 바로는 영화관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서 호빗을 혼자 보는 게 나을지 고민이 되었다. 혹시라도 자기와 잘 되면 같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니까. 영화 시간은 3시 50분이었고, 그 때까지도 두 시간 정도 시간이 있었기에, 홍콩 공항 구경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인천 공항과 함께 시설면에서 항상 상위권에 있는 공항인만큼 깔끔했다. 그렇다고 구경할 것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놀이공원이 아니고 공항이니까! 쇼핑몰을 구경하다가 장고 끝에 영화표를 예매하고 점심으로 간단히 시저 샐러드를 먹었다. 그리고 잠시 앉아 휴식.
그러고보니 중화권은 처음이다. 아시아에서 가 본 곳이 일본 뿐이었는데, 일본은 익숙한 것들도 많고 언어적인 장벽도 낮아 갈 때마다 외국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여행의 재미는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레임도 있어야 하는 법이거늘! 일본은 그냥 부산에 간 정도의 기분이랄까? 홍콩은 달랐다. 우선 한자가 익숙한 한자들이 아니다. 여기저기 익숙하지 않은 언어(중국어)로 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왠만하면 영어가 잘 통한다는 것! 99년 동안 영국령이기도 했고, 관광도시인만큼 남녀노소 영어는 어느 정도 다 구사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쓰겠지만 홍콩에 있는 5일 동안 모든 곳에서 의사소통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아무튼 시내는 가보지 않았지만 공항 분위기도 벌써 일본과는 달랐다. 그럼에도 전혀 긴장감은 들지 않았는데 아마도 유럽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습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약간의 휴식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영화를 감상했다. 어차피 영화가 끝나도 자기 비행기 도착 시간에는 여유가 있었으므로 느긋하게 즐겼다. 서울에서는 3D IMAX로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기에 잘 감상했다. 3D 안경이 조금 불편했지만 적절히 감상. 영화 자체는 제법 스케일 큰 전투 장면도 나오고 나쁘지 않았다. 2편에서 위용을 자랑했던 스마우그가 영화 시작 10분만에 쓰러지긴 했지만 후반부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괜찮았다. 하지만 난 역시 영화관에 혼자 가는 체질은 아닌 것 같다. 그냥 그렇구나 멍 때리다 나왔다. 그리고 비행기 시간을 확인해보니 자기가 타고 오는 비행기가 곧 도착할 것 같다. 어차피 착륙해서 나오는 데까지 거의 1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려도 좋았으나, 왠지 자기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그런다고 빨리 나오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서서 게이트 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1시간 정도 지난 후 저 멀리서 후광과 함께 걸어오는 자기를 발견! 하지만 자기는 날 보지 못하고 걷고 있었고 내가 먼저 달려가 자기 앞에 섰다! 잠시 놀란 듯한 눈을 보였지만, 곧 서로 인사를 나누고 미소를 지었다. 난 아마 입이 귀에 걸렸던 것 같은데, 거울을 보지 않았으니 확신은 않겠다.
자기를 만난 후, 옥토퍼스 카드(교통카드)를 사고 침사추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2층 버스 제일 앞 칸에 자리 잡은 후 자기 옆에 앉아 설레임을 가지고 창 밖과 자기를 번갈아 바라 보았다. 약 40분 정도 달리니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중화권 도시의 도심 풍경이 나타났고 우리의 목적지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자기를 만났다! 공항->침사추이로 향하는 2층 버스 안에서!
첫날은 침사추이에 있는 한인민박집 '드림하우스' 라는 곳을 예약했었다. 예약할 당시 주인장이 갑자기 연락이 끊겨 걱정했으나, 도착하니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 미리 쉬고 있던 여행객 한 분이 간단히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어서 다행이었지 아니었으면 암담했을 뻔 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다고 봐야할지도. 미리 예약했던 방 호수에 짐을 풀고 간단히 메모를 남긴 후 침사추이의 밤거리를 즐겼다.
침사추이는 우리를 환녕(wellcome)해 주었다. 알고 보니 이거 체인점이더라... 하긴 얘네가 나보다 영어 잘 하잖아...
그러다가 적절히 체인점으로 보이는 파스타 집에 가서 늦은 저녁 식사를 즐겼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시켰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들어간 식당 치고는 손님도 많고 맛도 있었다. 두 음식 모두 약간 짰지만, 이게 홍콩의 맛일지도 모르지. 이야기를 나누며 흐뭇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일어났더니 종업원이 제발 앉아 있으라고 제스쳐를 취해서 결국 카드를 맡기고 남는 자리에 다시 앉아서 기다렸다. 잠시 후 계산을 마치고 다시 홍콩의 밤길을 거닐어 방으로 돌아왔다.
엄청 맛집이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지만, 제법 괜찮았던 홍콩에서의 첫 저녁 식사. 홍콩식 요리가 아닌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정도?
홍콩에서의 첫날은 자기가 장시간 비행을 해서 무리하지 않고 쉬기로 하였다. 방에 들어와서 자기에게 주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준비했던(혹자는 왜 이게 잘 지낼 때는 안 나오냐고 평하였다던...) 귀걸이를 선물하고, 씻고 침대 위의 전기 장판을 켠 후에 오래간만에 자기에게 팔을 내어주고 둘 다 곧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